본문 바로가기

야스퍼스와 하이데거: 과학기술의 가치 중립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

readingbite 2024. 10. 1.

1. 과학기술과 가치 중립성

 

과학기술의 가치 중립성은 과학과 기술이 본질적으로 가치 판단과 무관하다는 개념을 의미합니다. 즉, 과학기술 자체는 도덕적 선악을 포함하지 않는 도구이며, 그 사용 방식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현대 철학자들은 과학기술이 단순히 중립적인 도구로 머무르지 않으며, 그 자체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논의에서 야스퍼스하이데거는 각기 다른 입장에서 과학기술의 본질과 그 가치 중립성 문제를 탐구했습니다.

 

 

2. 카를 야스퍼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과학과 기술이 현대 사회에서 갖는 역할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했습니다.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의 중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삶과 실존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경계했습니다.

 

  • 과학기술의 중립성: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이 그 자체로 중립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과학기술은 도구에 불과하며, 그 도구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이 더 많은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인간의 도덕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기술과 인간성: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했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특히 과학기술이 비인간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할 경우,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즉, 과학기술이 인간의 도구로 남아 있어야 하며,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 책임의 중요성: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이 중립적인 도구이더라도, 그 사용에 있어 도덕적 책임이 따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과학기술을 사용할 때 책임감을 가지고 도덕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이 중립적이라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3. 마르틴 하이데거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0세기 철학의 중요한 인물로, 과학기술이 인간 존재와 세계에 미치는 근본적인 영향을 깊이 탐구한 철학자입니다.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단순히 중립적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로 존재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이해를 강요한다고 보았습니다.

 

  • 과학기술의 본질: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며, 그것이 세계와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과학기술이 인간이 세계를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며, 모든 것을 자원(자연, 인간 포함)으로 보고 사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인간이 세계를 소유하고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만 보는 태도를 강화한다는 비판입니다.

 

  • 기술적 세계관(기술적 존재론):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고 주장하며, 이를 기술적 세계관 혹은 기술적 존재론(Enframing, Gestell)이라고 불렀습니다. 과학기술은 단순한 도구적 역할을 넘어서, 세계를 기술적 방식으로 틀짓는 것(enframing)으로 정의하며, 이는 인간이 존재 자체를 도구화하고 착취하려는 태도를 강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위험과 구원의 가능성: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그 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과학기술이 세계와 인간 존재를 도구적 시각에서 벗어나, 더 깊은 본질적 사유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기술적 사고를 넘어서 존재와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때, 과학기술이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4.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차이

 

야스퍼스하이데거는 모두 과학기술이 현대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지만, 그 철학적 입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 과학기술의 중립성: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이 그 자체로 가치 중립적이라고 보았으며,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도덕적 선택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단순한 도구에 머무르지 않으며, 인간의 존재 방식과 세계 이해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 책임의 강조: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의해 윤리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과학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도덕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이데거는 기술 그 자체가 인간의 존재 방식을 틀짓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 이전에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 구원의 가능성: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지만, 동시에 존재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기술을 단순히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는 입장입니다. 반면,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을 보다 도구적이고 인간 중심적으로 이해하며, 인간의 윤리적 책임에 더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5. 현대적 의미: 과학기술과 인간의 책임

오늘날 인공지능, 유전자 조작, 기후 변화 대응 기술 등 다양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 기술적 발전과 도덕적 책임: 야스퍼스의 사상은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기술의 중립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사용에 있어서 인간의 윤리적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 기술적 세계관의 위험성: 하이데거의 기술적 존재론은 현대 사회에서 기술이 인간의 삶과 자연을 도구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경고를 제시합니다. 이는 기후 변화, 자연 파괴, 생명윤리 등의 문제에서 인간이 기술적 사고를 넘어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6. 결론

 

카를 야스퍼스마르틴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의 본질과 그 가치 중립성 문제에 대해 각기 다른 철학적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야스퍼스는 과학기술이 중립적 도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하이데거는 과학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존재와 세계 이해를 틀짓는다고 보았으며, 기술적 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도 그 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윤리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철학적 틀을 제공합니다.

댓글